신규입사자도 팀원임을 깨달았다
글또 8기와 회사 신규 입사 이후 쓰는 첫 글이다. 좀 더 거창한 기술 글을 써내려가고 싶었다. 아직 그정도 깜냥은 못된다. 사내 도메인을 이해하고 협업 규칙을 익히는 데에 정신이 없다.
지난 1개월 간 첫 회사 생활인 만큼 모든 게 낯설고 무서웠다. 기대도 많았다.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신입에게 필요한 역량’같은 글들을 보며 다짐했다.
- 최대한 빨리 적응해 일인분의 신입이 되자!
- 선배 팀원들에게 폐를 끼치지 말자!
- 우테코에서 배운 기술 지식들로 휘황찬란하게 팀 내 레거시를 개선하자!
회사 생활 1개월이 지난 지금, 위의 3가지 다짐을 대폭 수정했다.
미생은 없었다
드라마 ‘미생’을 보면, 신입 장그래는 회사에 적응하지 못해 자잘한 실수를 한다. 반면 등장인물 ‘안영’은 똑부러져 신입답지 않게 일을 똑부러지게 해낸다. 중학생 시절 이 드라마를 보며 안영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냉혹한 정글같은 회사 생활에서 알아서 척척 일인분을 하는 커리어우먼 신입.
백엔드 개발자로 회사에 들어온 후 놀란 점은, 회사 그 어느 곳에서도 ‘원 인터네셔널’의 분위기를 느낄 수 없었다는 것이다. 회사가 정글이라면 그 유일한 이유가 사내 벽에 걸린 담쟁이 식물 뿐이었다. 직급이라고는 ‘팀장’과 ‘팀원’ 뿐이었다. 처음 팀에 들어오고 일주일 동안 팀원 별 면담을 진행했다. 10명의 모든 팀원들은 ‘무엇이든 물어보라’고 했다. 각자 자신있는 질문에 대한 답변 분야를 알려주시기도 했다.
신입보단 신규입사자
감사한만큼 무서웠다. 팀 일정이 밀리면 어쩌지? 상상 속 회사는 정글이고, 나는 민폐 끼치는 장그래였다. 그러다가 팀장님과 1on1을 진행했고 막막한 마음으로 ‘신입으로서 갖춰야 할 역량’에 대해 질문했다. 당시 들었던 얘기는 놀라웠다.
‘신입’이란 단어를 잊어라. 정 그러면 신입 대신 ‘신규입사자’ 용어를 쓰자.
신규입사자도 똑같은 입사자이다. 팀원으로써의 역량이 곧 신입으로써의 역량이다. 오히려 자신을 신입이란 틀에 가둬 무언가를 더 못하거나, 더 잘해야 한다는 강박을 갖는 것이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회사원은 가장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해야 한다. 모르는 것들은 시간을 아끼기 위해 빠르게 질문하고 해결해야 한다. 신입 뿐 아니라 팀원 모두가 모르면 질문한다. 집단지성으로 팀 내 문제들을 해결해나갔다. 또한 답변은 꼭 문서나 코드로 남겨놔야 한다. 그것이 팀의 시간을 아끼는 길이다. 즉, 모든 판단의 기준은 시간과 효율이다. 업무를 효율화하기 위한 여러 방법을 고안해야 한다.
책임 없는 자유
아직 수습기간이 5개월 남았지만, 운영 DB를 날리더라도 수습해제가 될 일은 없다는 말을 들었다. 단순한 일감에 대해 기획팀에서 직접 미팅을 잡아 설명해줬다. 팀원들은 페어프로그래밍을 제안했다. 무언가를 해도 되냐고 질문하면 마음대로 하라고 답변받았다. 다소 무서운 배포의 순간까지도 그랬다. 무언가를 눌러도 되냐고, 이게 맞냐고 질문하면 팀원은 맞을거라 대답했다.
팀 위키의 포맷을 간소화하는 일을 진행했다. 드라마 속 마음대로 문서 포맷을 바꿔 혼이 나던 장그래와는 달랐다. 문서 틀을 제안하면 팀원들은 👍 이모지를 날려줬다. 코드 리뷰 속 사소한 질문이 주간 회의에서 다뤄져 그라운드룰에 추가되기도 하고, 사소한 슬랙 질문에 수십개의 댓글로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뿌듯한만큼 무서웠다. 회사는 무엇이든 제안하고 실행하고 질문하는 놀이터였다. 초중고, 대학생 기간까지 명확한 답이 정해진 삶을 살다가 모래사장에 떨어지니 너무 넓었다. 실패가 두려웠다.
일인분이라는 허상
그 즈음 다른 팀원과 대화했다. 지난 한달 간 업무 역량에 대한 평가를 부탁했다. 팀원 분은 ‘지우님은 1인분 이상 하셨어요’ 라고 말했다. 한게 뭐가 있다고? 그저 모르는 걸 질문하고, 주어진 사소한 일을 눈치보며 처리한 것 말고는 없었다.
팀원분은 질문을 하고 답변을 정리하고, 팀 내 위키 포맷을 바꾼 정도면 할 걸 다 한거라고 말했다. 초기에 팀에 들어와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은건 당연하다. 팀에 적응하고 나서는 익숙해져 보이지 않는다. 그렇기에 팀원 모두의 격려를 받으면서 업무 방식들을 구체화, 문서화하는 작업은 신규입사자이기에 더 잘할 수 있는 일이다.
일인분의 기준은 무엇일까? 일을 빠르게 처리해내는 사람일까? 팀원들을 복돋아주고 미팅을 효율적으로 진행하는 사람일까? 일인분의 기준, 즉 업무 역량의 기준은 다양하다. 다양한 방식의 기여가 있고 모두 소중하다.
어떤 기여는 이력서나 스펙으로 설명할 수 없지만 팀에 큰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정량적인 일인분을 산출하는 것은 어렵다. 또한 그 모든 기여들을 혼자 해낼 수는 없다. 그렇기에 개발자로서 필요한 여러 역량들 중 어떤 점이 나의 특장점이 될 수 있는지 고민하고, 그걸 내 캐릭터로 만들려 한다.
모든 것은 내 몫이다
겁 없이 질문하는 것, 도메인을 이해하는 것, 리팩토링을 진행하는 것, 신규 미팅에 참여 버튼을 누르는 것, 신규 업무를 직접 제안하는 것 모두 자신의 몫이다. 이젠 예전처럼 학교에서, 부모님이 정해주지 않는다. 모든 결정이 성공할 수는 없지만, 실패가 두려워 유아무야 일을 미룰 시 자신 뿐 아니라 팀 전체가 타격을 받는다.
그렇기에 위의 3가지 목표는 다음 목표들로 바뀌었다.
- 겁먹지 않고 실행해 시행착오에서 교훈을 얻자!
- 팀원들에게 폐를 끼친다는 생각 말고 질문하는 연습을 해보자!
- 모든 리팩토링과 제안들을 팀과 의논해 결정하자!